협회소식

광주일보(2018.06.18)

관리자 0 2,015 2018.07.31 11:58

광주일보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장·백석대 교수] 웰 다잉(Well-Dying)과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20180618() 00:00

 

내가 쓰러지더라도 병원에 데려가지 마라이것은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하지 않고 평온하면서 품위 있게 아름다운 마무리를 원하는 친정어머니께서 유언을 에둘러 표현하신 것이다. 바로 웰다잉을 실천하시고자 함이다.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제명대로 살다가 집에서 편안하게 죽는다는 고종명(考終命)을 수(), (),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과 함께 오복(五福) 중 하나로 여길 만큼 존엄한 죽음을 염원했다. 고종명이 곧 웰 다잉(well-dying)이었다. 그러고 보면 평온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첨단 과학 기술과 의학의 발달은 100세 시대를 가능케 해 장수의 복은 누리게 됐으나, 아이러니 하게 집에서 편이 숨진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15.3%에 불과하고 74.9%는 병원에서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외롭게 생을 마감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의학적 치료가 역설적으로 존엄하고 품위 있는 마무리를 막고 있는 셈이다.그동안 우리는 잘사는 것(well-being)에만 전력을 다하고 잘 죽어가는 것(well-dying)에 대해서는 터부시하거나 외면함으로써 당하는 죽음이 되다 보니 이런 안타까운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범국가적으로 존엄한 마무리를 위한 제도가 만들어졌다. 올해 2월부터 그동안 논란이 돼왔던 연명 의료 결정법’(웰 다잉법, 존엄사법)이 시행됨으로써 존엄하고 품위 있는 웰 다잉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연명 의료 결정법이 본격 시행된 지 3개월 만에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등록자가 2만 명을 돌파했으며 연명 의료 계획서(의사가 작성) 등록자도 3300명을 넘어섰다. 이 중에서 연명 의료 유보 및 중단을 실행한 사례는 5801건에 이른다. 연명 의료 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 의료의 시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연명 의료란 치료 효과가 없는데도 환자의 생명만을 연장하기 위해 시도하는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 의료 행위를 말한다.웰 다잉을 준비하는 첫 번째가 연명 의료 결정법에 따른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작성이다. 이것은 19세 이상의 사람이 생의 마지막을 병원 중환자실이 아닌 곳에서 가족들에 둘러싸여 평온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연명 의료를 거부한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오랜 문화로 정착되었다. 최근에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연명 의료를 거부하고 가족에 둘러싸여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더구나 장례마저 소탈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떠나셨다.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가 잘 죽는 방법을 알면 잘 사는 방법을 알게 된다고 한 것처럼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로 귀결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일을 준비한다. 이를테면 입시 준비,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출산 준비, 여행 준비 등. 그러나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지금은 심각한 생명 경시 현상으로 자살과 타살이 날로 증가하며 저출산 고령화로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다. 따라서 무관심과 부정으로 돌아보지 않았던 죽음 준비 교육을 각 발달 단계에 맞게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죽음 준비 교육은 죽음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 주어진 삶의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영위하고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이게 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평소 정리하고 준비하고 화해하는 삶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수환 추기경처럼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인사와 소유하신 모든 것 각막까지도 기증하고 특수 처치를 위해 중환자실에도 가지 않고 평온하게 수명을 다한 모습을 모두의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대한웰다잉협회는 삶과 죽음을 양극적인 사고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선상에서 이해하며, 아름다운 마무리(well-dying)를 통해 아름다운 삶(well-living)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등록 기관으로서 서울 경기를 비롯 전국 69개 지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이제 광주 지역에도 웰 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 광주 서구지회가 개설됐다. 무척 반갑고 기쁜 일이다. 많은 분들이 광주 지역에서 건전한 웰 다잉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은 물론 자신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당신이 아직 건강한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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